달력속이야기

[6월] 6.25전쟁 70주년,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겠습니다.

봉봉c 2020. 6. 24.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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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70주년, 참전용사들을 잊지않겠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공산군이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하여 일어난 한반도 전쟁.

 

 

1945년 제 2차세계대전이 종결되고 한국은 일본의 점령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카이로회담에서 나라의 독립은 약속이 되었지만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
미국과 소련 양군이 분할로 진주하여 국토분단의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948년 5월 10일 유엔의 감시아래 남한 단독으로 자유총선거를 실시하였고 같은해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그리고 1948년 5월 북한은 조선헌법을 선포하였고 같은해
9월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출범시키게 됩니다.
북한을 인민군 창설 후 소련의 지원으로 남침을 준비하였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남침을
강행합니다. 남침 후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남한의 국군과 연합군의 반격으로 낙동강선 방어에
성공한 유엔군은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성공의 성공으로 전쟁의 흐름이 뒤바뀌게 됩니다.
전쟁발발 후 98일만인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할 수 있었고 점차 전쟁이전의 상황으로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한국군이 10월 1일에 38도선을 넘어 북진을 하였고 이어 유엔군도 북진을 하며 10월 19일 평양을
점령하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950년 11월 북한을 지원하기위해 대규모의 중공군이 개입을 하였고 전쟁의 양상이 바뀌며 
1951년 1월 4일 북한지역에서 유엔군은 철수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1.4후퇴'입니다.

 

'1.4후퇴' 이후 1951년 7월 10일 개성과 판문점에서는 휴전회담이 열렸지만 회담은 처음부터 난항을
거듭하였고 장기간 회담이 진행되었습니다. 이때 회담이 순조로우면 전쟁이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지만
회담이 결렬되거나 지연되면 치열한 전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6.25전쟁이 일어나고 3년 1개월만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중공군, 유엔군의 대표가 회담끝에 
휴전협정에 서명하며 전쟁은 종식되었지만 당시 한국정부는 분단을 고착화하는 휴전을 인정할 수 없어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벌써 6.25전쟁이 일어난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얼마전 6.25전쟁에 참전하였던 남한의 147구의 국군유해가 70년만에 고국으로 귀환된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유해들은 북한에서 발굴이 되었고 미국 하와이의 DPAA에서 보관하는 유해중 국군전사자로 판정된 유해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북한의 평안남도 개천과 평안북도 운산, 함경남도 장진호 일대에서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발굴되었던 유해들이
북미 1차 정상회담이후 2018년 미국으로 보내졌고 이 유해들을 한미공동감식을 통해 147구가 국군유해로 

판정되었습니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가의 분단이라는 아픈 역사를 갖게 되었지만 그 참담했던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했던 호국영웅들을

마음속 깊이 기리며 아직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그 분들이 하루 빨리 돌아오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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